[노트북을 열며] ‘노 재팬’이라는 이름의 유령
지난달 16일 일본 도쿄 다이칸야마(代官山)의 차코트 발레 스튜디오. 수업이 끝난 후, 한 일본 여성이 다가와 “한국에서 오셨다니 반가워요”라며 배우 박서준의 사진을 보여줬다. 발레 선생님도 “요즘 한국 분들이 다시 꽤 오셔서 반갑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도쿄에선 어디를 가도 한국어가 들려왔다. 지난 정권 일었던 ‘노 재팬’ 물결에 용일(用日)을 주장했다가 “친일 토착 왜구의 OO를 찢어버리자”는 악플·악메일 세례를 받았던 게 3년이 채 안 됐는데, 격세지감이다. 숫자도 ‘노 재팬’의 종언을 증거한다. 지난해 출국한 658만145명 중 109만260명이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한 달에만 45만6100명의 한국인이 일본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방일 한국인은 조용하지만 확실히 늘고 있다. 팬데믹 끝에 여행 수요가 폭발했고, 엔저 효과 덕이라고? 하지만 ‘노재팬’ 당시를 생각해보라. 반일감정으로 국민을 조종했던 정치 세력은 휴화산일 뿐이다. 특정 정치세력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그간 이해보다 단죄에 에너지를 쏟았다. 서로의 판단 기준만이 옳다며 두 개나 가진 귀는 틀어막고 하나뿐인 입만 열어왔다. 지금 중요한 건 ‘노 재팬’ 썰물이 남기고 간 잔해를 점검하는 일이다. ‘노 재팬’ 밀물에 휩쓸려간 이들은 얼마나 많은가. 일본 여행 갔다고, 일본 맥주를 마셨다고, 일본 차를 몰았다고 뭇매 맞은 이들 말이다. 정치적으로 선동·악용된 ‘노 재팬’ ‘죽창가’는 영어 표현으로 ‘방 안의 코끼리’다. 불편하지만 모르는 척하는 존재를 뜻한다. 방의 5년짜리 주인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질 뿐. 얼렁뚱땅, 은근슬쩍, 두루뭉수리하게 없었던 일로 지나가서는 코끼리를 방 밖으로 내보낼 수 없다. 오해 마시라. 친일하자는 얘기가 결단코 아니다. 일본에게 따질 것은 냉정한 머리로 끝까지 따져야 한다. 그러나 국가는 이사할 수 없다.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의 국익을 위해 일본은 경계는 하되 때론 손을 맞잡아야 하는 상대다. 차코트에선 “한국에 가서 맛있는 것 먹고 싶다” “BTS는 언제 입대하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인근 에비스의 댄스 스튜디오에선 K팝 클래스가 문전성시다. 정치인들은 소모전을 계속해도 민간교류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 그렇기에 지금 더욱, ‘노 재팬’이라는 이름의 코끼리를 직시할 때다. 그렇지 않으면 ‘노 재팬 정치’의 진자추는 되돌아올 것이고, 한국은 다시 반일이란 소모적 논란에 굴복하며 뒷걸음질할 것이다. 이렇게까지 성장한 멋진 대한민국에 이웃 국가 일본은 잘 이용해야 할 전략적 파트너다. 전수진 / 한국 투데이·피플 팀장노트북을 열며 재팬 이름 재팬 정치 방일 한국인 가도 한국어